2019-05-24

통회의 슬픔과 회심

  • 날 짜  :  05·24(금요일) 존웨슬리회심일
  • 찬  송 :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 성  경 :  디모데전서 1:12~15
  • 요  절 :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3)

사막 영성의 아버지로 일컫는 성 안토니는 사람에게 으뜸가는 일이 바로 ‘통회의 슬픔’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존전에서 자기 죄를 나무라는 이 통회의 슬픔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랑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하나님과 분리되고 단절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아 그에 대한 처절한 통회의 슬픔이 있을 때 나는 하나님을 향해 단호히 돌아서게 되고, 그 순간이 바로 본래의 내 자리로 가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존 웨슬리 회심일입니다. 그의 회심은 불현듯 다가온 것이 아닙니다. 모라비안 교도들의 신앙에 깊은 인상을 받은 그는 미국 사역이 비참하게 실패로 끝날 무렵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읽고 ‘참된 신앙은 먼저 마음에 뿌리내리고 자라서 생각과 말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마음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은 그는 이때부터 시간을 정해 기도하고, 매주일 성찬을 받으며 말과 행동에서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결코 영적 성숙을 이룰 수 없다는 절망적인 사실에 직면하고 맙니다. 그러던 중 1738년 5월 24일 영국 올더스게이트의 한 교회에서 누군가 로마서 서문을 읽는 소리를 듣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체험을 합니다. 그의 깊은 자신에 대한 절망과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어 하는 열망 가운데로 성령께서 찾아오신 것이고, 마침내 뜨거운 회심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의 고백입니다. 그가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앞에서 자신을 뭐라고 고백하는지 보십시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13) 이는 자신의 정체성 전체를 무너뜨리는 고백입니다. 그동안 그는 혈통, 출신, 학문 등에서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율법학자일 뿐 아니라 헬라 문화권에서 지성인 중의 지성인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부활하신 예수님과 맞닥뜨립니다. 그리고 땅에 엎드러져 소리를 듣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행 9:4) 본문은 바로 그 순간을 회상하는 바울의 고백으로, 마침내 그는 이렇게 단언합니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15) 비로소 자신을 죄인의 자리에 둔 통회의 슬픔,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도 있기를 소망합니다.

자신과 정직하게 대면하여 통회의 슬픔과 회심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자비하신 하나님, 많은 순간 나의 경험과 지식의 세계를 절대화하여 주님을 향해 돌아서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나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교만을 깊이 통회하며, 회심을 통해 온전히 나의 영혼이 주님께로 돌아서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석문 목사 _해운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