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의 품 교회의 품
- 날 짜 : 2021년 10월 11일 월요일
- 찬 송 : 527장 어서 돌아오오
- 성 경 : 마가복음 4:30~32
- 요 절 :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32)
고(故) 서명석 목사님은 제가 목회 초년생일 때부터 많이 따르던 분입니다. 이 땅의 여느 목회자처럼 이름 없고 빛도 없는 평범한 목회자였지만, 곁에는 늘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과 우연히 마주칠 기회가 있었는데, 성직자에서부터 건달까지 꽤 다양했습니다. 생전에 그분과 동행했던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다들 그의 품을 잊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도 그 품을 좋아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큰형님처럼 푸근하던 그 넓은 품에는 저를 포함한 다양한 인생들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당대에 무엇 하나 당당히 내세울 만한 것이 없으셨던 예수님 주위에 각양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것도 아마 비슷한 이유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개중에는 모난 의도를 가지고 예수님을 찾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결국 그 품에 끌려 십자가 아래까지 동행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입니다. 말씀이 살아 있는 종교라는 의미입니다. ‘살아 있는 말’은 듣는 사람이 그 말에 깊게 수긍하여 따르게 되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많은 사람들이 깊이 수긍하여 따른 것은 그분의 달변 때문이 아니라 그분의 넓은 품 때문이었습니다.
품이 받쳐 주지 않는 말은 공허합니다. 아무리 유창하고 그럴싸한 논리를 지니고 있어도 귀담아듣지 않게 됩니다. 반면 소리 높여 외치지 않아도 경청하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그 품에 끌리게 되는 사람의 말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세상이 교회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반증이기 때문입니다. 목소리를 높이거나 별다른 말이 없어도 그 품이 그리워 찾게 되는 장소가 교회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맡겨진 복음은 그 품을 통해서 세상에 전해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의 품이 주님의 품처럼 넓고 푸근한지, 그리하여 각양의 사람들이 깃들 수 있는 품인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모든 것이 신속하게 물질적 가치로 환산되는 자본사회를 버둥거리며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맘 편히 기댈 수 있는 품이기 때문입니다. 여러 다양한 사람들이 넉넉히 깃들었던 예수님의 품을 느끼게 해주는 장소로서의 교회가 되기 위해 함께 기도합시다.
김부린 목사 _동이마을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