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은 이의 소원

  • 날  짜 : 2025년 10월 23일 목요일
  • 찬  송 : 292장  주 없이 살 수 없네
  • 성  경 : 로마서 9:1~8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3)

한 랍비가 마을 어귀에서 하룻밤을 지내려는데 어떤 사람이 달려왔습니다. “지난밤 꿈에 천사가 나타나, 오늘 여기에서 만날 랍비님께 값진 보석을 받아 영원한 부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랍비는 보따리를 뒤져 보석을 꺼냈습니다. “이것을 말하는 겁니까? 며칠 전 숲길에서 주웠소. 원한다면 가져가시오.” 선뜻 건네주는 보석을 받아보니 사람 머리만큼 큰 금강석이었습니다. 환희에 차 집으로 돌아온 밤,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동이 트자마자 달려가 랍비를 깨웠습니다. “선생님, 이 금강석을 그처럼 서슴없이 내줄 수 있게 하는 그 보물은 대체 무엇입니까? 이 보석을 돌려 드릴 테니 그것을 주십시오.” 다들 침 흘리며 탐내는 것을 선뜻 내주는 마음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구원받은 마음도 그만큼 자유롭습니까, 아니면 보물을 안전하게 소유하려는 집착으로 가득합니까? 이런 질문은 신앙의 근본에 대한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가? 문제 해결과 완벽한 보호 때문인가, 아니면 영생의 보장 때문인가? 내세에 눈물도 아픔도 없는 영원한 생명만이 궁극적인 목적인가?’ 무시할 수 없는 이유들이지만 바울은 더 깊고 넓은 영혼을 보여 줍니다.

바울은 영생조차 기꺼이 내줄 만큼 간절한 소원을 지녔습니다.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더라도 이루고 싶은 바람입니다. 그것은 동족 이스라엘의 구원입니다. 모세도 금송아지를 만든 백성들의 죄를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길 간구하면서 말합니다.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출 32:32).”

구원은 이들처럼 영생보다 더 소중한 것을 품은 마음이 아닐까요? 바울과 모세에게 영생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동체의 구원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이 지옥에 있다면 천국에서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영생조차 포기할 수 있는 사랑, 그것이 십자가에서 주님이 보여 주신 길이고, 모세와 바울이 따른 구원입니다. 자기 집착으로부터의 구원이 없다면 사랑도 영생도 불가능합니다. 성령님이 이끄시는 길은 나는 죽고 내 안에 주님이 사시는 구원입니다.

나의 가장 중요한 소원은 무엇입니까?

사랑의 본체이신 주님, 공동체를 향한 모세와 바울의 사랑을 깨닫게 하옵소서. 그 놀라운 사랑의 근원 되시는 주님의 마음을 온전히 알게 하옵소서. 그 사랑을 부어 주셔서 소중한 이들을 마음껏 사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태혁 목사 _ 두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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