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기준
- 날 짜 : 2025년 7월 6일 주일
- 찬 송 : 429장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 성 경 : 누가복음 17:11~19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6)
지금까지 걸어온 인생길을 되돌아보니 살면서 받은 가장 귀한 선물은 그리스도인으로 부름 받은 삶,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삶이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삶인지를 깨닫고 감사의 찬양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범사는 모든 일, 평범한 일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에서는 감사가 끊이지 않아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다가 사마리아와 갈릴리사이 어떤 마을에서 나병 환자 열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그들은 차마 예수께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하고 멀찍이 서서 소리 높여 말했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13).” 예수님은 그들에게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14).”고 말씀하셨고, 그들은 제사장에게 가는 동안 몸이 깨끗해 졌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예수께 다시 돌아와 감사 인사를 드린 사람은 단 한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이방 사람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17).”고 질문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 아홉’에 속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감사를 드린 사마리아인 같은 사람입니까? 감사는 그리스도인이 삶에서 실행해야 할 귀한 덕목입니다.
우리는 큰 병에 걸렸다가 나음을 받거나 위기를 넘기는 등 ‘큰일’에는 감사하지만, 일상의 사소한 일에 감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감사의 기준을 너무 크고 높은 곳에 두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밤에 잠이 드는 것과 아침에 눈을 뜨는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이렇듯 당연하고도 작아 보이는 일에서도 우리는 감사할 수 있고, 기쁨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감사는 우리가 누리는 복의 규모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의 믿음의 규모입니다. 감사의 기준을 낮추어 범사에 감사하고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길 바랍니다.
이웅천 감독 _ 둔산성광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