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18

생명이 너를 삼킬 것이다

  • 날  짜 : 2025년 9월 18일 목요일
  • 찬  송 :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
  • 성  경 : 고린도후서 5:1~5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4b)

죽음의 눈초리는 섬뜩합니다. 무심히 일상을 살다가 불현듯 그 눈초리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언제든 달려들어 우리를 집어삼킬 수 있는 어둠의 힘, 죽음의 무시무시한 힘을 의식할 때 우리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놀라운 반전을 예고합니다. “죽음이 생명을 삼키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죽음을 삼킨다.” 바울의 목소리는 단호합니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큰 풍파처럼 휘몰아쳐 오는 고난과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막막한 현실을 맨몸으로 견뎌내는 성도의 모습은 황량한 벌판 위에 서 있는 장막, 초라한 텐트처럼 위태로워 보였을 것입니다. 장막(skenos)은 플라톤 이래로 유한한 인간의 몸을 가리키는 은유적 표현입니다. 바울은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음을 예감합니다. 장막이 무너진다는 것은 생명이 스러진다는 뜻입니다. 생명이 죽음에게 삼켜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생생한 비전이 바울의 시야를 가득 채웁니다. 무너진 장막 위로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내려와 그 장막을 감싸 안습니다. 땅의 장막이 하늘의 집을 ‘덧입는 것’입니다. 하늘의 집은 우리가 죽은 후에 가는 ‘장소’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새롭게 완성된 ‘부활의 몸’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옷 위에 새로운 옷을 껴입는 것처럼, 지금 우리의 몸이 영원한 하늘의 몸을 덧입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언젠가 벗어 던져야 할 지긋지긋한 굴레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 몸으로 사랑하고 아파하면서 순례의 길을 걸어갑니다. 사랑의 상처, 고난의 흉터, 뼈아픈 고통, 수치, 한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우리의 몸이 영광의 몸을 덧입을 것입니다. 두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그대로 간직한 예수님의 몸이 부활의 몸을 덧입으신 것처럼 말입니다.

죽음의 세력이 우리를 삼키려고 입 벌리고 달려드는 것 같은 현실이지만, 우리는 말씀을 통해 더욱 강력하고 생생한 현실을 우러러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몸이 새 생명의 몸으로 덧입혀짐, 크고 영원하신 생명에 삼켜짐을 미리 맛보며 노래합니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크고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까?

두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보이며 제자들에게 평화를 선포하신 주님, 고통과 상처가 가득한 몸이 부활의 몸을 덧입게 됨을 믿으며 전진합니다. 우리의 눈을 열어 주셔서 생명이 죽음을 삼키는 놀라운 승리를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손성현 목사 _ 숨빛청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