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의 시대, 나눔의 영성
- 날 짜 : 2024년 11월 5일 화요일
- 찬 송 : 196장 성령의 은사를
- 성 경 : 마태복음 19:16~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1)
스위스의 저명한 실천 사회학자인 장 지글러는 자신의 책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서 오늘날 세계가 식량 과잉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에도, 왜 기아와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은지를 사회 경제적 관점에서 추적했습니다. 그로부터 5년 뒤 저자는 앞선 책에 비해 더 깊은 철학적 성찰을 가미한 『탐욕의 시대』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묻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불가항력적인 고통은 어쩔 수 없더라도, 인간이 만들어내는 고통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그런 고통 앞에) 나는 왜 편안하게 살 수 있는가?” 인간의 탐욕에 대한 그의 해답은 공감이었습니다. 그것이 인류의 미래라고도 했습니다.
유대교의 눈으로 보면, 오늘 본문의 부자 청년은 ‘복의 교과서’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모범적인 유대 시민이자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으로 추앙받을 만합니다. 유대적 가치는 ‘부자/빈자’를 그 자체로 하나님 복의 증거로 삼기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눈으로 보면, 곧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보면, 이 청년은 한참이나 모자랍니다. 어떤 면에서는 최악의 신앙인일지도 모릅니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재물 자체가 문제였다면 예수님은 그에게 재물을 얼마나 소유했는지를 추궁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청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
려고 하면, 가서 네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네가 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21, 새번역).” 곧 예수님의 관심은 ‘재물 소유의 정도(How much do you have?)’가 아니라 ‘재물 나눔의 정도(How much do you share?)’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청년은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갔습니다(22). 이로써 청년의 실존이 낱낱이 드러납니다. 청년은 자기가 재물을 소유한 줄 알았겠지만, 결국 재물이 그를 소유한 것입니다. 재물이 그를 집어삼킨 것입니다.
기독교는 ‘나눔’을 말하는 종교입니다. 소유의 시대를 사는 우리의 신앙은 나눔을 통해 완성될 것입니다. 죄인을 구원하신 주님이 생명을 내어주신 것처럼 말입니다.
임태일 목사 _서강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