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부인하셨더라면
- 날 짜 : 2024년 3월 13일 수요일
- 찬 송 : 461장 십자가를 질 수 있나
- 성 경 : 디모데후서 2:8~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13)
언젠가 상가 지하층에 자리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예배가 시작되기 전, 함께 방문한 목사님과 교회 내부 모습을 둘러보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도색을 깔끔하게 하고, 천장형 냉난방시설과 유아실을 갖추어 놓아 분위기가 참 좋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딱 하나 천장에 달린 전등이 눈에 걸렸습니다. “왜 천장 등은 안 바꾸었을까요? 요즘 엘이디(LED) 전등은 디자인도 깔끔하고 전기세도 적게 나오는데….”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비어 있는 줄만 알았던 강단에서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 예배 인도를 위해 일어서셨습니다. 싫은 소릴 그저 듣고만 계셔야 했던 목사님에 대한 죄송함과 뭐 하나 거들지도 않았으면서 어쭙잖은 말만 보탠 부끄러움으로 뒷덜미가 뜨듯해졌습니다.
바울 사도의 고백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 그가 느꼈을 두려움의 무게를 짐작해보며 내 모습을 찬찬히 돌아봅시다. 혹시 입술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외치면서 정작 십자가를 지는 삶은 외면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미쁘시기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자신을 부인할 수 없어서 십자가가 고통임을 알면서도 묵묵히 그 길을 가셨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려고만 들고 정작 나 자신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지 않는 걸까요? 나는 스승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인데 말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8).”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임을 부인할 수 없었기에 십자가의 고통과 수치를 감당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자기를 부인하셨더라면 십자가를 지지 않으셔도 됐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지 않으셨다면 부활도 없었을 것이고, 부활이 없으면 우리 믿음도 헛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자기를 부인할 수 없어서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의 미쁘심이 우리를 살린 것입니다.
“우리는 신실하지 못하더라도, 그분은 언제나 신실하십니다(13, 새번역).” 신실하신 주님의 뒤를 따라 오늘도 십자가의 길을 걸어갑시다.
이병길 목사 _산유리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