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를 물같이, 공의 강같이
- 날 짜 : 2022년 9월 24일 토요일
- 찬 송 : 315장 내주 되신 주를 참사랑하고
- 성 경 : 아모스 5:21~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24)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드리는 예배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순서와 전통은 그 뿌리가 출애굽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예배 의식에는 속건제, 속죄제, 화목제 등이 빠지지 않았는데, 이는 사람의 죄나 허물을 속해 하나님과 사람 간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이 바로 예배임을 보여 줍니다. 폴 틸리히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님과 인간 간의 분리를 극복하고 하나 됨을 회복하기 위한 예식적 절차가 예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배를 거부하십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정의와 공의를 팽개치고 힘없는 자들을 밟고 부당한 세금을 거두었기 때문입니다(암 5:7,11). 즉 일상의 삶이 예배와 동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믿음과 행위의 논쟁 안에 있는 바울의 메시지를 기억하게 합니다. 바울이 ‘행위’가 아닌 ‘믿음’을 통해 구원을 받는다고 한 것은, 행위를 일방적으로 비판한 것이 아닌 ‘믿음 없는 행위’를 비판한 것입니다. 믿음 없이 예배하는 행위,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척하는 행위를 책망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3~24).” 삶을 동반하지 않은 예배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예배는 죄의 용서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예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사소한 일들에 관여하시고, 이 일상이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와 하나님의 큰 길을 만들기 원하십니다. 유대 랍비이자 신학자인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은 사소한 일들 속에서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과 소통하는 것이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접촉점’이라고 했습니다. 일상의 사소한 일에서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곧 정의와 공의가 우리 삶이 될 때 예배는 하나님과 우리가 서로 화해하는 진정한 기쁨의 장이 될 것입니다. 일상과 예배가 온전히 하나 됨으로 주님이 우리를 기쁘게 받아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최대광 목사 _ 공덕교회
